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이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사람마다 부르심의 자리가 있고, 다 같지 않으며 각기 다르다.

그런데 사람이 타인의 부르심에 관심도 없으면서 단정짓는 일이 많다. 게다가 강요까지 한다.

왜지?

 

(여자도 안수주는 교단도 있는데,) 덮어놓고 안 된다

선교사도 남자만 선교사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가 주의 종이지,) 나만 주의 종이고 저는 주의 종이 아니다?

 

남 신경쓰지 말고 나나 잘해야지.

 

한참 고민했다.

나는 누구이지? 나는 왜 살지?

너무나 헷갈렸다.

어떤 말씀을 콕 짚어서 그게 진리인양...

나의 부르심은 너무나 강렬해서 아니라고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그 부르심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주인이 부르셨으면 그의 종이지 남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나는 주인이 부르신 대로, 주인의 뜻대로 살면 그걸로 끝이다. 더 내게 무엇이 없다.

난 사람의 종이 아니다. 나에 대해 그 어떤 강요를 용납할 수가 없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니까.

하나님이 부르신 그 안에 있기만 하면 된다.

내가 자유롭게 되면 반드시 그것을 이용하리라.

누구도 판단하지 마라. 판단하실 이는 오직 그분뿐이다.

모든 사람은 생긴 것이 다른 것처럼 받은 부르심, 사명, 소명이 다르다. 자기 자신이나 잘하자.

2023. 8. 21 개명신청

2023. 9. 5   신원조회 - 과정에 나타나지 않지만 사실조회 서류에 기재

2023. 9. 11 사실조회회신 - 경찰서에서 가정법원에 발신 [접수 후 3주차]

 

9월 11일에 법원에 전화해서 어느 단계에 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아무 것도 된 게 없고 3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서 다시 조회를 해보니 사실조회회신이 떴다. 내가 전화해서 서류를 넘겼나 여겼다.

검색해 보니 사실조회회신은 경찰서에서 법원으로 조회를 한 결과를 보냈다는 거란다. 에잇! 그러면 범죄사실조회로 넘어갔다고 말해주면 되지.

어제 9월 13일까지는 사실조회회신 버튼이 비활성화되어 있더니 오늘 들어가보니 활성화 되어 있다! 유후~

클릭하면 범죄경력조회서가 뜨는데 거기를 보니 9월 5일(접수 후 2주 1일차)에 조회가 되었고, 11일에 법원에 통지가 되었다.

 

접수 후 3주하고도 3일째인데 언제쯤 확정이 날까... 다음 주? 이번 달?

이제 판사 결정만 남았다는 건데... 마음이 급하다. 추석 전에 허가결정이 떨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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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개명신청 완료  (0) 2023.08.21

대략 40년 정도?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특이한 이름도 아니고 이상한 이름도 아닌데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고 여러 번 또박또박 한자로 무슨 자 짚어줘야 하고

ㅈㅎ, ㄱㅈㅇ, ㅁㅇ, ㅈㅇ 순으로 잘못 부르고 ㅈㅇ인데 한참을 ㅈㅎ로 잘못 기입하거나 잘못 부르는 일도 부지기수.

이름을 거꾸로 해서 배치를 어떻게 하면 강아지 같다 뭐 같다... 휴...

그게 어린 시절부터 하면 40여 년을 그렇게 지내온 것 같다.

ㅈㅎ가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무슨 이름에 대해 한참 얘기하게 되고 위에 나열한 내용까지 가게 된다.

그래서인가 어느 때부터는 내 이름이 굉장히 싫어졌다.

바꾸고 싶은 적이 많았으나 개명까지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병원에서도 또 ㄱㅈㅇ란다.

그래서 개명할 결심까지 오게 되었다.

 

평범한 이름이었지만 더 평범하게 이름 얘기 안 나오는 이름을 고심하였다.

내 친구가 ㅁㅅ인데 ㅅㄹ으로 수 년 전에 개명을 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어색해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전체 다 바꾸지 말고 아주 안 어색할 수는 없겠으나 덜 어색하도록 한 글자만 바꾸는 걸로. 두 글자 다 맘에 안 들기는 하는데 정말 싫은 한 글자만.

엄마가 ㅈㅅ을 추천했지만 그것도 좋기는 한데 내가 외국인들에게 이름이 불리며 살기 때문에 발음하기도 어색하지 않은 걸로 오래 심사숙고했다.

 

개명할 결심을 굳히니 빨리 실행하고팠다.

엄마는 이왕 바꿀 거면 빨리 서류를 넣으라고 하는데 시부모님이 허락하실지.

물론 시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셔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이름 불릴 거 기분 좋게 선뜻 불러주시면 좋겠어서.

오래 개명할 생각을 품고 있다가 아버님 생신모임 때 말씀드리기로 하고 모든 형제 가족들이 돌아가고 난 후에

우리 식구만 남았을 때 개명하겠다고 남편이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사유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시는데 당연히 사유가 있으니까 ㅎㅎ

어머니는 나중에 들으시더니 ㅈㅇ보다 ㅈㅇ가 낫기는 하다 그러셨다.

그렇게 기분 좋게 새이름이 불릴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오늘 아침 9시가 땡 되면서 (이미 모든 서류는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가상계좌를 선택해서 수수료 송금 완료!

9시 15분, 서류는 법원에 정식으로 제출이 되었다.

벌써 행복하다.

개명허가가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꾸는 귀찮은 작업들이 많다지만 나는 그 반복되는 일정들 매일 매일도 행복할 것 같다.

내 이름이 하나 하나 새이름으로 바뀌어가고 새이름으로 정복되는 것을 서류로 보게 될테니.

다들 더 낫기는 하다고 해주니 좋다. 우리 아이들도 지금 이름도 좋지만 새이름이 더 낫다고 해준다. 이제 늬들 엄마 이름은 ㅈㅇ여 ㅈㅇ.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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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과정  (3) 2023.09.14

하루가 멀다하고 요즘 기사에는 범죄 관련이 너무 많다.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나 범죄가 없을 수 없지만 요즘 한국은 내가 알던 한국이 아닌 것 같다.

조선족이나 외국인이 많아져서? 전혀 아닌 건 아니겠지만 범인은 내국인이 많으니.

중남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집마다 담에는 뾰족한 철사가 둥글게 둘러있고, 대문은 철창문이고 현관도 바깥쪽은 창살문이고 그 다음에 안쪽문이 있다.

참 삭막하네, 얼마나 위험하면 그럴까 그랬었는데 이제 한국도 택배라고, 검침원이라고 열어줬다가 사건이 일어나고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나갔다왔는데 그새 범인이 들어가 있었던 사건도 기억난다.

바깥에 누가 있는지 문을 함부로 열 수 없는데 한국도 이제는 더블문을 달아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에도.

현관문 바깥으로 철창문을 달아야하지 않을까.

창문만이 아니라 바깥으로 드나드는 현관에도 말이다.

대문과 담 위, 도둑이 넘어들어올만한 곳은 뾰족한 철사가 둘러 있다. 바깥에 누가 있는지 볼 수 있도록 대문이 철창문으로 되어 있고 현관도 마찬가지.

들어갈 때도 열쇠가 필요하지만 나올 때가 열쇠가 없으면 잠겨서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 ㅋㅋㅋ

그래도 이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싶다.

아파트는 현관 바깥으로 철창문 달면 안 되나?

다음에 주택에서 살 기회가 되면 여기처럼 철창문 달아야겠다. 무서워서 살겠나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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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다.

눈에 보여야 판단하고 이해되어야 행동하는 사람이고, 실제적으로 될 수 있는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 남편과 얼마 동안 나누었던 tema가 있는데 쉽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어느 날은 미국에서 아르헨티나에 처음인 목사님이 행사차 방문하셨다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며 나누었는데 남편이 말한 그런 것이었다. 솔직히 남편이 의심스럽기까지(?) 했었는데 나를 위해 그분을 보내셔서 믿도록 하심이 아닌가.

결혼 전 좀 힘들게 살았어서 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재정의 채워주심인데 결혼한 지 14년을 돌이켜보니 돈 때문에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물론 우리는 돈이 없다. 교역자 사례비가 얼마나 되는가.

신혼 때 시부모님 집에 얹혀 살며 남편은 무임사역하며 교통비로 받는 20만원에, 나는 막 사역지를 더 멀리 옮겨 교통비도 많이 나가는데 더 적은 60만원해서 토탈 80만원으로 신혼을 시작했었다.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면 얻어 먹고 그래서였지 80만원은 미혼청년이 혼자 살기에도 힘든 액수다.

그러면서 사례비 받으면 비비큐 반 마리 포장해와서 행복하게 나눠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부모님을 떠나서 남편 혼자 사역하고 우리 둘만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돈이 많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부족하지 않았다. 무임사역하던 남편이나 어렵게 살았던 나나 모아둔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때문에 뭘 못하거나 돈 때문에 크게 고생한 기억이 없다. 옛날에 어릴 때나 돈이 없어 무시받았지.

돈 때문에 싸운 기억도 없고, 돈 때문에 오는 갈등도 없었다. 물론 좋은 집에 살 수 있는 돈도 없었고 한국에서의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선교 나가려고 남편 고향으로 다시 올라갈 때에야 고민은 됐다. 돈이 없어서.

그러나 어찌저찌해서 지방살이, 사역을 청산하고 이사는 했다.

 

사정상 교단을 통해서 나가지 못해 국내에 주파송교회가 없었다. 하나님이 주파송교회를 미국에서 붙여주셨고 국내 작은 개척교회 동기 목사님들이 조금씩 후원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보다 물가가 싸니까 그리 힘들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십일조 10%를 모았다. 한국에서는 5만원 해봤자 큰돈은 아닌데 현지에서는 클 수 있는 돈이라 현지 어느 교회에 십일조를 내기 어려워 일단 모으기 시작했다. 그것을 모아 현지 교회 어떤 성도의 집 지붕을 고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또 모아서 코로나 상황 가운데 문구류를 사다가 현지 교회에 기부하고, 또 모아서 스탭들 생필품 사서 나눠주고...

재작년 하반기에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잠시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계속 십일조를 떼고는 있었다.

감사하게도 돕는 손길이 있어 1년은 한국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 동안 빨리 치료받고 다시 나가야지 했는데 웬걸 상황은 1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있는 건강상태가 아니어서.

게다가 약품이 비급여라 1회당 5백만원이 나가게 생겼는데.

5백만원이면 남을 주라고 하면 주겠는데 나를 위해서, 단 한 번의 투약을 위해 5백만원? 헐...

세 번 정도 맞았나... 하나님, 더 안 되겠어요. 그냥 몇 번 더 맞고 말아야겠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검색을 하다가 급여로 바뀌었다는 놀라운 기적같은 뉴스를 접했다. 25만원이 넘지 않게 되었다.

 

들어온 지 1년 정도 되어갈 때쯤 정리한 것을 보니 돕는 손길들이 들어온 때부터 연말까지, 1월부터 그 시점까지 얼마인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그 때 십이조를 실행했다. 10% 십일조, 10% 사역비.

그 20%는 내 병원비로도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사역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선교사님 가정이 선교지로 나갈 때 드리니 오히려 우리를 도와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받느냐고 100% 거절,

그러나 이 돈을 안 받으셔도 우리는 못 쓰는 돈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야 너무나 미안하게 받으신다.

그 20%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100%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일부는 우리가 생활이나 병원비로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물질을 주실 때에는 목적이 있으시다. 다 너희만 잘 먹고 잘 살아라 하시지 않으신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신다.

 

올해 들어서 터키(튀르키예)에 지진이 났는데 거기에 아는 선교사가 없어 일단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사역했던 교회, 지금 일시적으로(?)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헌금을 받는다고 광고가 올라와서 얼마를 헌금하고,

남편이 예배 중에 은퇴 선교사를 위한 선교관에 대한 마음이 들어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당연히 아깝지는 않으나 그 용도가 맞는지 다시 물었고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는 늘 틀린 적이 없기에 곧 우리가 모은 10%의 모든 금액을 주님 앞에 드렸다. 그래서 계속 모으게 하신 것이었나보다.

그 다음 날,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액수가 많아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그 교회의 교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란다.

외국인 의사가 선교사를 돕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투병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부터 후원을 받다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제한이 없으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의심이 없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면 반드시 될 것이고 무조건 아멘이다.

우리가 우리 몫으로 돌린 금액에서 헌금을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몫으로 떼놓고 모은 것에서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사용할 몫으로 바로 응답하셨다.

 

며칠을 내가 정리해놓은 파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또 다시 실행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 십삼조를 실행해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당연히 "해~ 당신이 원하면".

한국에 머문 지 1년 반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우리는 어려움이 없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질수록,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단해야 할 비중도 같이 커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십사조다. 십오조, 십육조... 십구조까지 바라본다. 1:9로 시작해서 9:1까지 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개척교회 목회자 자녀들 장학금, 아픈 사람들/사역자 의료비, 선교사 사역지원비 등 지원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나만 누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흘려보내고 더 많이 흘려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각 사람마다 적용이 다를 수 있음, 또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은 어떤 조건이 있음도 아님을 밝힘)

2022년 12월 24일, 우리 가족은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우리말성경만 가지고 있었는데 버전통일을 위해 아이들을 위한 성경을 엄선해서 사왔다.

표면컬러와 내부 디자인 및 설명들을 보고 기뻐했던 우리 아이들.

 

창세기-출애굽기에 이어 민수기(레위기는 민수기 후에)를 현재 마쳐가고 있는데 출애굽기 후반부터 레위기, 민수기는 넘어가기 어려운 코스이다.

Chodings가 잘 지나가줄까 걱정이 좀 되기도 했는데 통독 시작할 때 차라리 쓰는 게 낫겠다며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이자하면 싫다 하지 않고 잘 참석해서 감사하고 대견하다.

보통은 1인 1장으로 계산해서 4명이니까 하루에 4장씩 몇 절씩 돌아가며 읽는다.

어제는 좀 늦기도 하고 우리도 우리의 컨디션과 아이들이 성경통독에 질리거나 지치지 않도록 조절해서 32, 33장 두 장만 읽자고 했더니 늦은 밤에 퍼즐 맞추다가 싫다는 기색없이 모였다.

33장이 걱정됐다.

그런데 그 문제의 부분이 아빠 당첨!

ㅇㅇ를 떠나 ㅇㅇ에 진을 치고... 이게 계속 반복되는 구간이었다. 입으로 읽는 게 이런 부분이 나오면 좀 힘들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눈으로 봐도 힘든 구간.

 

한두 절 읽다가 반복되니 웃음이 나왔고 아이들도 웃기 시작했다. 아빠가 리듬을 타는 게 느껴져 후렴구를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어 내가 "떠나"-"진을 치고"를 함께 했더니 만류한다. 그러나 전직 교육전도사인 나는 이 힘든 코스를 아이들 인식에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심어주기에 나쁘지 않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것이지만, 물론 진지해야 하지만, 언제까지 출애굽기 후반, 레위기, 민수기를 생각만 해도 숨쉬기 어렵고 성경통독을 포기할 것인가.

아이들이 민수기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 가족의 선교여정도 상처와 혼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은가. 성경통독이든 교회 관련한 것이든 늘 엄숙하기만 하고 지루하고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면 그게 잘하는 걸까.

엄숙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 잠깐의 즐거움으로 가정의 화목과 그 시간의 즐거움과 우리 여정에 대한 감사와 민수기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취할 것인가. 힘든 고개를 잠깐의 웃음으로 잘 넘어가는 게 더 좋은 게 아닌가. 물론 장난타임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균형을 잘 잡아야지.

뭐 그런 생각이 그때 든 건 아니었지만 잘 지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 후에 나도 은혜 받았던 것이다.

 

서울에서 살다 수원에 진을 치고,

수원을 떠나 전주에 진을 치고,

아이들과 전주를 떠나 다시 수원에 진을 치고,

수원을 떠나 연천에 진을 치고,

연천을 떠나 다시 수원에 진을 치고,

수원을 떠나 코스타리카에 진을 치고,

코스타리카를 떠나 아르헨티나에 진을 치고,

(아이들은 거기서 유치원을 한 번 더 옮기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한국에 진을 치고

 

만 세 살, 만 두 살에 전주에서 떠남부터 시작하여 수원에서는 짧게는 한 달도 안 돼서 또 변경, 몇 달 안 돼서 또 변경,

만 네 살과 만 세 살이 되자마자 한국을 떠남을 너무 어려 부지 중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우리 아이들은 "왜 우리가 여기에 살아요?"하고 물을 때에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물었을지...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과 함께 계시고 아빠 엄마는 어디에 있든지 너희와 함께 있으면 감사하고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하면 되지 않느냐"고 답을 해주곤했는데 잘 따라주어서 감사했다.

이렇게 민수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그 이상의 답이 된 것 같아서 기뻤다.

 

나도 부름받은 선교사지만 모든 과정 과정이 다 이해될 수는 없었다.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순종해서 가는 것이 나처럼 인생의 여정이 아닌가.

33장을 웃음으로 그렇게 마치며 내 마음에 은혜가 되었다.

그 걸음들이 헛되지 않고 하나님이 그렇게 이끌어오셨던 것을 다시금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었다.

선교사인 우리,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사님들의 믿음의 여정들이 헛되지 않음과 하나님의 은혜의 손 위에 있음이 눈에 그려짐에 감사하고 위로도 되었다.

오늘 그 은혜를 아이들과 나눠야겠다.

이렇게 가족 성경통독 시간을 가지라고 힘든 재항암이 힘들지 않게 해주신 것 같다.

너무나 두려웠는데... 감사합니다 주님.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시 147:10-11

 

 

오랫동안 '난 무엇을 잘할까'에 대한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것 하나는 있다'는 말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하는 것은 없었다.

우울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없는 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사역을 할 것인가...

슬펐다. 태어난 이유, 살아가는 목적이 주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실수 하나만 발생해도 내 마음엔 좌절감이 컸다.

누군가 지적 한 번만 해도 '역시 난 안 되는구나...' 싶었다.

남편과도 얘기하면서 많이 울었다. 난 이게 뭐냐고. 남편은 당신이 잘하는 게 뭐냐 없냐며 하나님만 바라보자고 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누구나 다 하는 마음 하나 그게 무슨 대수.

남편은 나와 성향과 기질이 너무 달라서 그런 거라고 잘 듣지도 않았다. 나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다르다며.

 

홍구화 교수님이 누구나 다 그런 능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그 말에 위로가 약간 되었다.

이상하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게 하나는 있다는데...

 

어제는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를 보게 되었는데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 그렇게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걸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려 하고 지지 않으려고 하고 지나친 뭔가를 내세우려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또 그런 나를 볼 때 그런 생각을 해왔다.

티비를 볼 때 저 사람도 자기가 세상을 살만한 가치를 보이고 싶거나 느끼고 싶었구나 싶었다.

나도 그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서 자꾸 일을 만들고 성과를 내기 원한다.

 

남편이 늘 나에게 했던 말대로, 성경에서도 말한다.

 

네가 잘해서가 아니야. 네가 잘나서도 아니야.

말이 힘이 있다고 내가 기쁘니? 너희가 능력이 있다고 내가 기쁘니?

아니다. 나를 경외하고 나의 인자함을 바라보는 자들을 내가 기뻐하는 거란다.

너는 나만 바라봐라. 네가 하는 일은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거야. 내가 하는 대로 넌 따르기만 하면 돼.

엄청난 수고를 하라는 게 아니란다. 너는 그냥 나만 보면 돼. 내가 다 할 거니까 걱정하지마.

 

자존감이 낮은 사람, 인정받지 못한 사람, 잘하는 게 없는 사람...

다 괜찮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점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어떤 스펙적인 능력이라면 나처럼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니다.

'존재' 자체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모든 이에게 일반은총을 베푸신다.

아이를 갖지 못해 눈물을 짓는 사람들 많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때 배운 것은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생명은 사람의 소관이 아닌 것이다.

자식이 없어서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중요하고 소중한 거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내가 잘하는 어떤 능력이 없어도 나의 정체성은 '나를 부르신 이'와 함께 가는 것이니까 이제 거기에서 힘들지 않고 그냥 그냥 편하게 살아가련다. 뭘 이루려고 노력하고 애를 써봤자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 있으리.

1등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 못했다고 해서 못 사는 것도 아니더라.

내 힘에 부치게 병나도록 애쓰지 말고 그냥 길이 열리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리라.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리라. 그래야 내가 산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것 만으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롯데마트 치킨이 싸다고 노이즈 마케팅이 장난 아니라 저렴하고 양 많은 치킨은 어떨까 궁금하여 오늘 롯데마트에 납시었다.

10시부터 오픈인데 몇 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내가 받은 번호표는 118번. 가져갈 수나 있을까 그냥 갈까 했는데 번호가 금방금방 불려진다.

이마트처럼 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순서대로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1시 45분.

신랑과 10여 분 늦게 도착하여 금방 나온 따끈따끈한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푸드코드에서 치킨의 느끼함을 잠재우기 위해 짬뽕까지 곁들였다.

싼 치킨치고 맛있었다. 이 정도라면 사 먹을 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편한 시간에 오면 먹을 수 없고 오픈 전에 와야만 먹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뭐 가끔 이렇게 먹는 것도 좋긴 하지만 매일 같이 너도 나도 몇 개씩 이런 건 동네 이름 없는 치킨집을 위하여 돈을 쓰는 것도 어떤가.

 

신랑 자켓을 사려고, 신랑에게 뺏겨버린 내 양말도 사고 굴도 사려고 마트를 좀 다녔다.

자켓은 사이즈와 기장 때문에 사지 못하고 양말과 굴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난 신랑을 괜히 떠본다.

"우린 크리스마스 트리 안 사?"

난 집안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꾸밀 줄도 모르고 좁은 집에 구태여 그런 것까지 놓을 필요는 없다는 주의이다.

하지만 유치하게도 난 신랑의 '반응'이 '늘' 궁금하다.

그래서 정말 그러고 싶은 마음은 아닌데 이렇게 하면 어때? 하고 물을 때가 많다.

도대체 난 왜 이러는 거야! 푸핫!

이 글을 보면 신랑이 또 한숨 푹 내쉬겠지. 눈에 선하다. 아마도 핀잔 들을지도... ㅋㅋ

어쨌든 난 신랑 앞에서만큼은 어린 애처럼 반응이 궁금하여 유치한 질문을 하는 게 다반사가 된다.

신랑은 좁은 집에 저런 게 뭐가 필요하냐고, 나중에 애들이 생기고 어느 정도 자라면 그 때 사서 꾸미자고 한다.

지금 사다놓으면 다 망가지고 버리고 관리도 못한다고.

난 그 말에 서운함도 없고 그저 우리 신랑 생각이 그렇구나 할 뿐이다. 그냥 그게 궁금한 거다. 내가 생각해도 참 유치하다.

난 트리 꾸미는 것도 그다지 관심 없고 별로 좋지도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이 사자고 해도 싫다고 할 것 같다.

다 꾸며 놓은 걸 보면 예뻐보이긴 하겠지만 다닥다닥 붙여놓은 자잘한 것들 아이들도 어지럽힐 텐데 어떻게 관리할 거야.

난 이렇게 재미도 없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사람. ㅋㅋ

그러면서 왜 신랑 반응은 떠보나. ㅋㅋㅋㅋ

그래도 한 때이니 조금만 참으세요~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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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마트 피자, 롯데마트 치킨으로 인터넷과 TV가 시끄럽다.

솔직히 약간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만 인건비, 가게유지비, 생활비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치킨 같은 경우 프랜차이즈 치킨가게들이 나서서 시위까지 하는 걸 보면 좀 우습기도 하다.

옛날엔 종이봉투에 싸오는 통닭을 대단한 간식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B**, 교*치킨 등 브랜드 치킨(프랜차이즈 업체)이 생겨나면서 동네통닭집이 많이 죽었던 기억도 있다.

아마도 동네통닭집도 많이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래서 그나마 되는 집들은 프랜차이즈로 변경하기도 했겠지. 문 닫은 곳도 많이 있을 테고.

그런 걸 생각하면 그네들이 거리에서 시위하는 게 좀 씁쓸하게 여겨진다.

난 사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만을 얘기하는 아낙일 뿐...

오후가 되어서야 우리는 움직였다.

아버님 태워드리고 시장을 다니며 내 신발, 남편 옷 등을 샀다.

사다보니 겨울을 대비한 것들이었다.

 

남편과 여태껏 해보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음식 먹는 것이었다. 가령 떡볶이나 어묵 같은 것 말이다.

그걸 오늘 성취했다. 돌아다니다가 길거리 만두를 발견! 우리 남편은 만두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몇 개만 먹으려다가 저녁으로 때웠다.

만두 2인분에 어묵을 먹으며 국물까지.

 

그리고나서 남편은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바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갔던 찻집이었다. 시인과 바다? 약간 고풍스런 분위기에 책들이 꽂혀있거나 쌓여있는.

메뉴판을 들쳐보면 낙서를 하게 되어 있기도 하다.

다녀간 사람들의 메모, 낙서, 편지들...

처음 만났을 때 얘기도 하고 우리 서로 배불러 있는 상태에서 얼음 얼린 수정과까지...

서비스로 나온 찐감자는 몇 개 먹지도 못하고 그냥 두고 온...

 

뭘 좀 먹었다고 우리 남편에게 찾아온 식곤증. 시간은 가고 저녁 9시에 기도회가 있기 때문에 집으로 향했다.

시장을 다니며 데이트 겸 쇼핑. 그런 재미도 쏠쏠하다. 오늘 데이트의 컨셉은 월동준비.

우리 남편 생각은 그런 것도 있었지만 동절기 커플티를 사는 것이었는데 정작 커플티만 못 샀다. ㅋㅋ

 

episode

오늘 나를 향한 남편의 조바심에 난 항상 반론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오늘 남편의 기우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거리에서 만두와 어묵을 다 먹고 마지막에 국물 한 모금 마시고 남편 먹으라고 내려놓다가 그만 국물을 엎질렀다.

신발, 옷 등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바닥 안쪽에 내려놓았었는데 틈새로 국물이 흘러내려간 것이었다.

남편의 점퍼가 오뎅국물에 만신창이. 다행히 세탁기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 집에 가자마자 세탁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사자마자 국물범벅이 뭐람.

나는 이제 남편에게 우기지도 못하게 되었다. 깨갱~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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